자기검열: 저작권법을 오해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창작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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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작자와 한국 저작권법
2024년 진행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다수의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창작자들은 타인의 저작물을 자신의 작품에 활용하는 데 있어서 스스로를 검열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작품의 질적, 양적 손실을 주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 창작자들이 법에 보장된 권리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현행 저작권법은 저작권 소유자를 보호하는 동시에 새로운 창작에 있어 이전에 표현된 문화적 산물들을 참조하고, 비평하는 것을 허용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영화 창작자들은 저작권법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법에 보장된 이러한 균형 기능, 즉 저작권 예외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제작비의 증가 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창작자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있어 혁신적 아이디어와 창의적 탐구, 새로운 표현의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저작권 예외
대한민국의 저작권법은 저작권 소유자의 권리와 공정한 이용을 통한 창작자의 권리를 균형 있게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창작자들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저작권을 가질 권리가 있다. 동시에 저작권은 절대적인 소유권이 아니다. 저작권자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작품을 참조하거나, 특정한 사례로 인용하거나, 비판하거나, 역사적 사건의 예시로 사용하거나, 그 외에 자신의 작품의 정당한 시장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본래의 시장목적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저작권법은 여러 종류의 허가 없이 이루어지는 사용을 허용하는데, 이러한 사용을 저작권 예외라고 한다. 이는 저작권 소유자의 제한된 독점적 권리에 대한 예외를 허용하는 규정이다.[1] 이러한 예외는 저작자와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저작물을 공정한 활용을 통한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발전이라는 저작권법의 두 가지 목표에 대한 균형을 유지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러한 권리가 불균형해지면, 저작권은 미래의 문화 창조에 대한 사적 검열을 가능케 할 수 있을 것이다.[2]
현행 저작권법상의 가장 유연한 예외는 “공정이용(fair use)”으로, 다음 조건을 충족할 경우 기존 자료를 재사용할 권리를 가진다.
- 기존 자료의 시장 목적과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
- 활용되는 새로운 용도에 적절한 양을 사용하는 경우
이 두 가지 기준, 즉 ‘새롭고 다른 용도’와 ‘적절한 양’은 현재 미국저작권 법에서 공정이용시 고려해야 할 ‘4가지 요소’에 대한 법적 해석이며,[3] 지금까지 한국 법원의 결정은 이 논리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준은 “저작물의 일반적인 이용 방법과 충돌하지 아니하고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아니하는 경우(저작권법 35조의5)” 공정이용이 적용될 수 있다고 명시한 저작권법의 조항과도 일치한다.
한국 저작권법에서 공정이용은 2011년에 도입되었으며, 이 개정의 목적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확대된 저작권의 일부 조항과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었다.[4] 이 조항은 미국 저작권법상 공정이용의 법리(fair use doctirine)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5]
미국에서는 현재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들이 공정이용을 널리 활용하고 있다. 이들은 공정이용을 적용하는 것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해 스스로 모범사례 규정을 만들고 발표했다.[6] 이 규정은 이후 대형 미디어 회사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문제없이 활용되고 있다. 창작자들의 성명서는 cmsimpact.org/documentary에서 찾을 수 있으며,한국어 번역본은 cmsimpact.org/koreandocs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에서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공정이용을 통해 일반적으로 사용한 예는 다음과 같다:
- Hip Hop: Beyond Beats and Rhymes
여성을 고정관념화 하고 비하하는 방식을 보여주기 위해 힙합 뮤직비디오를 인용 -
Valentine Road
중학생이 다른 학생에 의해 살해된 사건을 재구성하면서 많은 뉴스 이미지, 클립 및 텍스트를 사용 -
Retro Report
그날의 뉴스에 대한 역사적 맥락을 제공하는 짧은 다큐멘터리를 제작
한국에서도 저작권이 있는 자료를 창의적으로 재사용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출한 작품은 매우 많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바람과 불(김경만, 2011), 두개의 문(김일란, 홍지유, 2012), Derivation(서현석, 2012), 삐 소리가 울리면(김경만, 2014) 등을 들 수 있다.
다큐멘터리 제작 관행
이번 설문조사에서 짧게는 1년부터 길게는 수십 년의 경력을 가진 다양한 영화 창작자들이 저작권법과 저작권 예외에 대한 이해와 사용에 대해 응답했다.[7] 조사 결과, 대다수의 다큐멘터리 창작자가 자신의 작업에 저작권이 있는 자료를 활용하고 있었다(97%). 이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모든 사람에게 저작권 예외는 유용한 권리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설문에서 다큐멘터리 창작자들이 저작권으로 얻는 수익은 크지 않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응답자의 77%는 저작권 수익에 의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타인의 저작권에는 비용을 지불하고 있었다. 거의 모든 응답자는 때때로 비용을 지불한다고 답했으며, 응답자의 절반은 대부분의 경우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25%는 저작권 침해사례를 경험했다. 그러나 응답된 모든 침해사례들은 전체 작품의 도용과 관련된 것이었으며 발췌와 관련된 응답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응답자의 80% 이상이 저작권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에도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가장 일반적인 이유는 형사고발과 벌금 등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응답자들은 이의가 제기되었을때 그것을 처리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 그리고 그 과정에서 평판이 손상될 수 있다는 것을 가장 걱정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도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응답자의 단 6%만이 저작권과 관련된 지식에 자신이 있다고 답했으며, 많은 이들은 저작권 예외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2/3에 달하는 응답자가 공정이용이라는 저작권 예외가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물론 한국 저작권법에 공정이용의 개념이 2011년에야 도입된 것이기에 그 역사가 길지 않아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으나,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방송과 언론 보도 등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저작권 예외인 인용의 권리(공정취급, fair dealing, 저작권법 제28조)조차 모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예외규정을 잘 알고 있었다면, 이 권리는 가치있게 활용되었을 것이다. 응답자의 약 10%만이 저작권 예외 조항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적이 있었으며, 공정이용을 적용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결과와 시사점
다큐멘터리 창작자들이 법의 취지대로 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영화 창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많은 창작자들은 저작권 문제를 피하기 위해 현실을 변형시켜야 한다거나, 영화 상 중요한 혹은 감정적으로 더 호소력 있는 장면들을 삭제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힌다. 또한 저작권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여겨지는 프로젝트는 기획조차 되지 못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역사를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의 성격을 훼손하는 것이며 문화의 다양성과 창의성이 제한되는 것이고 불필요한 노력과 재화가 들어가는 일이다. 인터뷰에서 다큐멘터리 창작자들은 작품 훼손의 다양한 사례들에 대해 말했다.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로 일부 사진을 변형했는데, 원본과 다른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높은 저작권료를 지불할 수 없었기에 영상이 아닌 다른 매체들을 활용했습니다. 하지만 영상이 주는 분위기와 정서는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의 다른 모습, 뒷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는 영상을 찾았지만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을 사용했다면 주인공의 이야기를 더 잘 보여줄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공정이용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 비용: 제작비와 제작기간의 불필요한 증가. 1/4이 넘는 응답자는 저작권 문제 때문에 통상 3-4개월의 지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 변형/가공/삭제: 다큐멘터리 창작자의 43%는 저작권 문제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변형시켰다고 답변했다. 창작자들은 배경음악을 빼거나, 저작권이 있는 음악을 다른 것으로 대체함으로써 자신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현실을 변형시켰다. 우연히 타인의 저작물을 부수적으로 활용했을 때 예외적으로 저작물 사용이 허용되는 저작권 예외조항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접근이 더 쉽거나 저렴하다는 이유로 덜 효과적이거나 호소력이 약한 소스를 활용하기도 했다. 씬 자체를 삭제하는 경우도 있었다.
- 배급의 제한: 1/5에 달하는 응답자는 이러한 저작권 우려 때문에 배급을 영화제 같은 비상업적 유통망으로 한정시키기도 했다. 응답자 중 한 명은 저작권 문제 때문에 이미 완성한 영화의 상영을 아예 포기했다고 답했다.
- 그냥 포기하기: 1/6에 달하는 응답자는 저작권 문제에 대한 우려 때문에 아예 어떤 프로젝트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상당수의 프로젝트는 아예 기획 단계까지 가보지도 못한 채 중단되기도 했다. 한 응답자는 이런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했다: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과정에서, 어떤 아이디어가 저작권 문제 때문에 복잡하게 들리면 아예 아이디어 자체를 접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작품의 방향이 정해지기만 한다면, 이런 기획은 저작권 예외조항을 이용해 제작이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외와 기타 문제
이번 연구에서 조사된 창작자들이 겪고 있는 모든 저작권 문제가 공정이용 혹은 다른 저작권 예외조항들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다큐멘터리 영화 창작자들은 저작권이 있는 자료에 접근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접근하지 못하면 저작권 예외를 적용할지의 여부를 결정할 수 조차 없다. 지상파 방송국, 신문사 등은 동시대 한국 역사에 관한 중요한 기록을 보유한 자체 아카이브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아카이브를 엄격하게 보호한다. KTV 아카이브 등과 같은 공공아카이브의 정부 생산기록물은 원칙적으로 자유이용대상이지만, 이 자료들 중 상당 부분이 등록저작물로서 국유재산법에 따른 국유재산으로 관리되고 있기에 저작권 예외에서 제외되어 있다. 정권 퇴진 운동, 사회적 참사 등과 같이 많은 기록이 이루어진 사건의 경우 독립 아카이브가 존재하는 경우가 있고, 개인 혹은 단체가 보유하고 있는 아카이브들도 존재한다. 이 아카이브들에 접근하고 활용하는 것 역시 프로젝트 자체에 대한 승인을 포함한 허가가 필요하며 경우에 따라서 비용이 요구될 수도 있다. 저작권 소유자는 저작권 사용에 대한 사적 검열 권한을 가지며, 자신이 승인하지 않는 자료 사용에 대해 접근을 거부할 수 있고, 그들은 원하는 만큼의 비용을 청구할 수도 있다.
연구결과, 몇몇 창작자들은 저작권 문제에 봉착했을때, 합법적인 우회로를 찾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이 존재함에도 무단으로 미승인 자료를 사용하고 법적인 위험은 감수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어떤 창작자들은 방송사로부터 추후 사용허락을 받는 조건으로 자료에 접근한 후, 높은 사용료로 인해 무단으로 사용한 경험을 공유했다. 이는 저작권법상 침해에 해당하는 방식이며 창작자는 자신이 접근할 수 있는 다른 경로를 통해 자료를 찾고 저작권 예외를 적용하는 것이 보다 안전한 저작권 사용 방식이라 하겠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저작권 예외가 다큐멘터리 창작자의 모든 저작권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공정이용을 비롯한 저작권 예외들이 창작자들에게 더 많은 도구와 선택지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1] 현행 저작권법 제23조부터 제36조까지 참조.
[2] 저작권 및 저작인접권 뿐만 아니라 다른 법률의 침해 여부 또한 저작권 사용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명예훼손 등에 대한 고려 역시 자료 사용 결정에 있어 고려해야 할 요소이다.
[3] “네 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다. 1. 이용의 목적 및 성격 2. 저작물의 유형과 목적 3. 전체 저작물과 관련하여 사용된 부분의 양과 상당성; 4. 저작물의 이용이 저작물의 기존 또는 잠재적 시장 또는 현재 또는 잠재적 가치에 미치는 영향 미국 저작권법 자체에는 이러한 기준을 어떻게 적용할지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법원의 이전 판례들이 유용하게 활용된다. 변형성(다른 목적) 및 양/종류(해당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저작물의 내용)에 대한 법원의 판례는 명확하다. Author Guild vs Google(804 F.3d 202). 또한 한국의 법학자들 역시 우리 법이 미국저작권법을 계수한 것이라 할 수 있고 우리 법의 공정이용 결정의 제1요소가 저작물 이용의 성격과 목적이라는 점을 들어 이런 판단은 동일 또는 거의 유사하고 고려될 수 있다고 본다. 세종대학교 산학협력단.(2019). 국내외 판례 조사 및 분석을 통한 공정이용(Fair Use) 가이드 제시를 위한 연구(최승재, 연구책임)(저작권 정책연구 2019-03), 한국저작권위원회.
[4] Kim, H. (2024). "Re-examining the compatibility of US fair use with Korean copyright law: challenges and suggestions for Korean fair use." Journal of Intellectual Property Law & Practice: 1-13.
[5] 이일호(2023), 우리 저작권법상 공정이용의 운영 현황과 과제, 계간 저작권, 155.
[6] 이 과정에 대한 보다 상세한 이해는 Aufderheide, P., & Jaszi, P. (2018). Reclaiming fair use: How to put balance back in copyright (2nd ed.). University of Chicago Press.를 참고할 것.
[7] 이 설문조사는 저자들이 2024년 3월부터 6월까지 워싱턴 D.C.의 아메리칸 대학교를 통하여 실시되었다. 설문조사는 응답자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안전한 플랫폼인 Qualtrics를 통해 실시하였다. 총 302명이 응답했으며 185명이 자격을 충족하여 설문조사를 계속 완료하였다. 설문조사 및 인터뷰 프로토콜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연구에 대한 윤리 심의 위원회인 미국 아메리칸 대학교의 기관윤리심의위원회(IRB)의 승인을 받았다. 설문지는 소셜 미디어의 전문가 그룹, 영화제(반짝다큐페스티발,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독립영화협회, 미디액트, 디엠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의 뉴스레터, 한국다큐멘터리네트워크의 행사 및 공지, 연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의 수업 및 코호트, 개인 연락처를 통해 온라인으로 배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