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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화인들이 공정이용 모범사례 지침(code)을 만들게 된 과정


패트리샤 아우프더하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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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리샤 아우프더하이드는 미국 아메리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2018년 출간된 『공정이용 되찾기: 저작권에 균형 되찾는 법』(Reclaiming Fair Use: How to Put Balance Back in Copyright)를 피터 야시 교수와 함께 집필했습니다. 

본 글은 패트리샤 아우프더하이드 교수님께서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에 머물면서 한미교육위원단의 2024 풀브라이트 중견연구자 사업의 지원을 받아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더 보기: 
Patricia Aufderheide and Peter Jaszi, Reclaiming Fair Use: How to Put Balance Back in Copyright, 2d. e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8.

모범사례 지침(code)을 만들기 위한 단계
  1.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를 정한다. 
  2. 문제를 규정한다. 사람들이 왜 작품활동에 공정이용을 이용하지 않는가? 
  3. 작업을 하면서 부딪히는 가장 흔한 사례들이 무엇인지 찾는다. 
  4. 각종 영화인 조직을 통해 당사자들을 모으고, 이런 상황에서 법적용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논한다. 최대한 많은 조직과 많은 회의를 진행하여 도출되는 결론이 해당 분야의 공통적이고 일반적인 의견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논의를 조직한다. 
  5. 각 모임의 결과를 종합한다. 
  6. 해당 결과를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법학자, 변호사 등으로 이뤄진 자문위원회에서 검토한다. 본 자문위원회는 영화인들에게 대처방안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논의 결과가 법적 테드리 안에 있는지 여부만을 자문해준다. 
  7. 자문 결과를 해당 영화인 조직에게 회람시켜 공개를 위한 해당 조직의 승인을 받는다. 
  8. 완성된 성명을 배급사, 방송국, 투자자, 관련 기관과 공유한다. 
  9. 이후의 과정을 면밀히 기록하고 해당 업계와 공유한다. 


2005년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인들은 공정이용 모범사례 지침(code)를 만들어 다큐멘터리가 미국 내에서 제작되고 배급되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첫 단계로는 2004년 연구작업이 시작되었다. 패트리샤 아우프더헤이드(Patricia Aufderheide)와 피터 재시(Peter Jaszi)는 미국 록펠러 재단의 지원을 받아 다큐멘터리 영화인들의 저작물 활용 실태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당시 영화인들은 저작권과 관련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대부분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상황으로 압축될 수 있다. 1) 기존 저작물에 대해 비판이나 비평을 할 때 2) 기존 문화 콘텐츠를 인용하여 무언가의 예시로 사용할 때 (예를 들어 어떤 사건이 벌어졌다고 설명하거나, 대중적인 현상에 대해 언급하거나, 일반적인 관습에 대해 언급할 때) 3) 타인의 저작물이 의도치 않게 자신의 작업에 등장하게 될 때 (예를 들어 카페를 촬영하는 데 배경음악이 녹음이 되는 경우) 4)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자 할 때. 영화인들이 타인의 저작물에 대한 이용 허락을 구하고자 할 때 대부분 결과가 좋지 않았다. 많은 경우 저작권자들은 문의 이메일에 답조차 하지 않았다. 음원의 경우 다양한 권리자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저작권료는 보통 비싸고, 일관된 기준이 없었다. 

영화인들 주변에는 또한 저작권법의 예외조항 사용이 위험할 수 있다며 경고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배급사들은 대개의 경우 영화인들이 E&O보험(Errors & Omissions Insurance: 영화의 오류나 누락으로 인한 손실을 책임지는 배상책임보험)을 통해 저작권 문제를 모두 안전하게 해결해 오기를 바란다. E&O보험 없이는 미국 내에서 방송, 케이블, 배급사와 계약을 하는게 불가능하다. E&O 보험사들은 공정이용을 활용한 작품에 대해 보험을 들어주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E&O보험사 입장에서도 다큐멘터리 업계 내 공정이용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변호사들은 영화인들에게 공정이용은 너무 위험하다고 경고해왔다. 변호사들은 물론 고객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고용된 전문가들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고객들은 가장 안전한 길을 택하기를 원한다.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타인의 저작물을 활용할 때 가장 안전한 길은 라이센스를 얻고 사용을 하는 경우이다. 라이센스(이용허락)는 쌍방 간의 계약이다. 그러나 권리는 계약과는 다르다. 다른 권리들과 마찬가지로 권리는 언제나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권리행사를 할 때에는 무엇이 통상적인 것인지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공정이용에 있어서 통상적인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반면 표현의 자유 같은 권리를 행사할 때에는 대개의 경우 무엇이 정상적인 범위 안에 있는 표현인지에 대한 상식이 있는 편이다. 보통 사람들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평소의 사회적 상식에 근거하여 말하거나 글을 쓴다. 공정이용의 경우에도 어떤 사례들이 일반적이고 정상적인지에 대한 공동의 상식이 확립된다면 비슷하게 법적용이 이뤄질 수 있다. 업계 내 게이트키퍼들도 업계 내 통용되는 기준에 대한 이해 없이 함부로 개입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 영화인들은 법원에서 판례가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공정이용에 대한 소송 사건이 매우 드물기도 하고, 소송이 발생하더라도 공정이용이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사례와는 무관한 희귀 사례들이었기 때문에 별달리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런 여러 상황들 때문에 결과적으로 미국 영화인들은 공정이용을 이용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작품을 수정하거나, 작품을 포기하거나, 문제되는 부분들을 통째로 삭제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현실을 왜곡시켰으며, 법적 해석의 불확실성 때문에 자기 검열을 수행했다. 우리가 발간한 보고서는 영화인들을 충격에 빠드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내린 결정들이 “프로페셔널"하게 일하는 것의 일환이라 생각했지, 자기 검열로 여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작품을 위해서 했던 타협이 차악을 선택한 것이라 여겼지, 현실을 변형하거나 왜곡하는 것이라 믿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공정이용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그 결과 다섯 개의 전국적 영화인 조직들이 회원들과 함께 공정이용을 보다 잘 활용하기 위한 방안들을 강구한 바 있다. 아메리칸대학  법대 교수인 피터 재시(Peter Jaszi)와 내가 이와 같은 노력을 조율하기로 했다. (록펠러 재단과 맥아더 재단이 이와 같은 노력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 이후 일 년 동안 미국 주요 도시(뉴욕, LA,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D.C., 시카고)의 베테랑 다큐멘터리 영화인들은 13개 소모임 별로 모임을 갖기 시작했고, 각각의 소모임 행사는 영화인 조직들이 주최했다. 

각 소모임은 다음과 같이 진행됐다. 먼저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 대한 배경설명을 듣고, 그후 영화인들은 사전 연구에서 도출된 문제들을 갖고 토론을 진행했다. 다음의 예시를 살펴보자. 

당신은 지금 “실제” 그리스 신화에 대한 방송 씨리즈물을 기획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리스 신화가 당시에 실제로 어떻게 전해졌는지를 다루는 기획이다. 오늘날 그리스 신화가 다뤄지는 방식과 고대 그리스의 경우를 비교하기 위해 헐리우드 영화를 인용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제이슨이라는 영웅을 소개하기 위해 1963년 영화인 <아르고 황금대탐험>(영제: Jason and the Argonauts)의 한 장면 중 제이슨이 시각전문 아티스트인 레이 해리하우젠의 무시무시한 괴물을 상대하는 장면을 사용하고자 한다. 일리아드를 논하기 위해서 영화 트로이의 전투장면 중 하나를 활용하고 싶고 브래드피트의 클로즈업도 포함이 되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현대적인 예시들을 다룰 때, 고대 그리스에 대해서 조사한 내용과 당시 신화가 전파되었던 방식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려고 한다. 덧붙여 현대 영화 안에서 그리스 신화가 얼마나 중요하게 다뤄지는 지 보여주기 위해 우디 앨런의 <마이티 아프로디테>(1995), 파졸리니의 <메데아>(1969), 그리고 디즈니가 제작한 <헤라클레스>(1997)의 주요 장면들을 엮어 몽타쥬 장면을 포함시키려고 한다. 이와 같이 영화의 주요 장면들을 발췌하여 당신의 연구 결과와 함께 보여주는 것은 공정이용에 부합하는 사용인가?
오늘날 영화 속 그리스 신화의 영향을 예증하기 위해 다양한 대중영화의 장면들을 몽타쥬로 묶어서 보여주는 것은 공정한 이용의 권리에 부합하는 것인가?
 
이런 다양한 상황들에 대한 토론을 통해 영화인은 타인의 저작물을 사용료 지불과 허락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적정선이 어디인지 숙고할 수 있었다. 그들은 또한 반대의 경우, 즉 타인이 자신의 저작물을 사용할 때에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은지, 또 어떤 경우에 사용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3시간의 토론 끝에 대개의 경우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진실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나는 공정이용 권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타인이 나의 저작물을 사용하는 것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내 작품을 사용할 때에는 단지 자신의 시간과 돈을 절약하기 위해 내 소스를 가져다 쓰는 것은 부당하다. 그런 경우에는 나에게 적당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는 사용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인 나의 이름을 명기하는 출처표기는 이뤄져야 한다. 그들이 나의 저작물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관객에게 타인의 저작물을 자신의 노동인 것처럼 전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영화인들은 이와 같은 소모임 토론을 통해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는데, 그 결론은 현행 판사들의 법해석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물론 그들은 법의 일반적인 적용이나 공정이용의 모든 경우를 논의한 것은 아니지만, 다큐멘터리 창작자로서 본인들이 마주하는 가장 흔한 상황에 대한 판단은 내렸다. 이후 몇 달동안 나와 재시(Jaszi) 교수는 각 소모임별 회의록을 전부 검토하고 모임별로 도달한 결론들을 추출하여 공정이용에 관한 모범사례 지침(code)을 기초하였다. 이렇게 도출된 초안은 다시 변호사 3명(고객 중 엔터테인먼트 업계 고객이 있는 경우도 있었음), 법대 교수 2명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가 검토를 했다. 그들의 법적 검토까지 거치고 나니 모범사례 지침의 신뢰도는 높아졌다. 이와 같은 결과물은 동시에 영화인들이 내린 집단적 토론의 결과물과도 다르지 않았다. 영화인들의 아래로부터의 논의를 조직하기 위해 참가한 다섯 개의 영화인 조직들은 이어서 공정이용 성명서를 각 조직의 이사회로 보내 공동 발의자로 문서에 싸인을 하기 위한 승인 절차를 거쳤다.  


2005년 11월 18일, 다큐멘터리 창작자들의 공정이용 모범 사례 성명서가 마침내 아메리칸 대학교 워싱턴 법과대학에서 발표됐다. 그로부터 8주 내에 세 개의 영화가 본 성명서를 활용하여 2006년 선댄스 영화제 상영을 앞두고 저작권 문제 해결을 도모했다. 세 개의 작품 모두 공정이용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커비 딕 감독의 <이 영화는 아직 등급이 없다>(2006)는 헐리우드 스튜디오들의 자율적 등급기구인 MPAA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작품으로 헐리우드와 독립영화 백 여편의 클립을 사용하는데, 공정이용 없이는 제작될 수 없었다. 감독에게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헐리우드 영화의 라이센스 계약에는 해당 영화나 영화계를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독소 조항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릭키 스턴과 안느 숀베르크가 만든 <대릴 헌터의 재판>(2006)는 살인으로 잘못 처벌된 수감자의 이야기를 그리기 위해 지역 방송국의 20년 간 영상기록을 활용한다. 그의 판결이 나중에 뒤집혀지자 지역 방송국은 갑자기 일체의 영상기록을 제공할 수 없다고 태도를 바꿨다. 자신들이 직접 유사한 작품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이 영화 역시 방송국 영상자료를 사용한 것은 전적으로 공정이용에 해당이 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바이런 허트 감독의 <Hip-Hop: Beyond Beats and Rhymes>(2006)는 힙합 음악 내 여성혐오를 다루는 작품이었는데, 이를 위해 다양한 노래의 가사, 음원, 영상이 필요했다. 이 감독은 아티스트를 비판하는 작품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애시당초 해당 아티스트의 허락을 맡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세 작품 모두 상당한 양의 라이센스 없는 저작물을 사용하고 있었고, E&O 보험도 가입되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방송국 방영이 확정됐다. 한편, IFC라는 영화사는 제작 중인 작품이 다른 여러 영화의 클립을 작품 내 사용하는 문제 때문에 예산이 초과되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 영화사는 성명서의 법적 자문에 참여했던 변호사의 도움으로 원저작권자들과 보다 유리한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저작권료를 너무 비싸게 요구하면 언제든지 공정이용을 통해서 허락 없이 저작물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협상에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어서 보험회사들도 성명서를 검토한 이후에 내부 정책을 바꾸기 시작했다. 한 보험회사가 <Hip Hop>의 보험을 들어주자 나머지 보험회사들도 공정이용에 대한 보험도 제공한다고 광고를 시작한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인들은 변화하고 있는 저작권 정책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개척했다. 그들은 법에 대해 스스로 공부를 했고, 시민이자 창작자로서 공정이용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되었으며, 업계 내 상식을 명확히 하기 위해 상호 협력을 하였으며, 그 상식을 자신의 작업에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또한 스스로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였다. 그들은 창작자이기도 하지만 기존 문화를 활용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새로이 하였다. 그들은 기존 문화를 선택하고 재규정하는 것이 창조적인 작업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타인이 자신의 저작물을 허락이나 비용 지불 없이 사용하는 것도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작업의 일부이기 때문에 용인할 수 있게 되었다.